여행/퇴사여행, 서유럽

레이나 소피아, 게르니카

야채타임스 2024. 4. 6. 23:36

- 피카소, 피에타

 
레이나 소피아로 향했다. 다수의 현대미술작품과 사진을 소장하고 있고 건물 자체가 현대 미술 작품스러운 미술관이다. 하루 꽉 채워 프라도와 소피아를 관람했는데 규모가 대단했다. 내 발바닥과 체력도 대단했다. 현대미술관에 가면 늘 알아먹지 못하는 책을 계속 읽는 듯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시도하는 나에게 박수.

피카소, 나는 라이프지만 보면 월터가 생각나.

 
<게르니카, Guernica>는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군이 스페인 게르니카 지역 일대를 1937년 4월 26일 24대의 비행기로 폭격하는 참상을 보고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 250~1600명 그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하였고, 또한 부상당했다. 거대한 벽화의 형상을 띈 이 그림은 1937년 파리 세계 박람회의 스페인 전용관에 설치되도록 스페인 정부가 피카소에게 의뢰한 작품이었다. - 위키백과 -


그리고 게르니카가 있었다. 커다란 전시실에 들어가면 하얀 벽에 걸린 거대한 크기의 그림에 먼저 압도당한다. 게르니카를 검색해 보면 관람객과 그림을 함께 찍은 사진이 많은데 그 또한 하나의 작품 같다. 보는 이를 몰입시키는 힘 때문에 이 그림 앞에 꽤 오랜 시간 있었지만 당시 이곳에서 마주한 게르니카는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했다. 수많은 관람객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림을 감상하거나 사색에 잠겨 있었지만, 나는 이 그림에서 어떠한 고통도 느낄 수 없었고 좌에서 우로 어떻게 보아야 될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감동을 얻어야 하나, 기술적, 혹은 미술사적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혼자 고민하다 전시실을 나오고야 말았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라는데.
 
 
멀리 마드리드에까지 와서 <게르니카>를 마주하고 선 그때 나의 가슴에 되살아나는 것은, 아직도 생생한 '광주 사건'의 기억이었다. 이때로부터 불과 3년 전, 1980년 5월 한국 광주시에서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다수의 학생과 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학살되었던 것이다. 굴욕을 당하고, 수탈을 당하고, 살육을 당해온 우리 민족은 과연 우리들 자신의 <게르니카>를 산출해 냈는가. 군국 스페인 오백년의 공포와 중압이 피카소를 낳았다고 할 때, 우리 민족에게 가해지고 있는 고통은 아직 가볍단 말인가.
[ 서경식, 나의 서양미술 순례 ]
 


 
 

피카소, 피에타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느 방송을 통해 게르니카를 다시 보면서 나는 80년 전 전쟁의 참상을 그린 그림에서 세월호 참사를 읽고 있었다. 그림 좌측에는 피카소의 피에타라 불리는 죽은 아이를 품에 안고 절규하는 어머니가 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지는 세월호의 그 장면을 80년의 시간을 거슬러 스페인의 화가에게서 읽고 있었다. 지금도 여자의 고통이 느껴지는 듯하다.
 
스페인을 여행하던 그때 나는 아직 야만을 겪지 못했던 것이다. 2014년 4월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세월호 참사.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야만의 시간들. 그때 저 거대한 그림 바로 앞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다면 나는 질식할 것 같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차마 위대한 그림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도 못 하겠다. 지금도 똑같은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이 작은 땅덩이 안에서도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어서. 
 
 
 
2014년 4월 16일 시민들의 마음이 그 배와 함께 가라앉았던 날. 시민과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고 있었던 그들이 있었습니다. 에어포켓, 골든타임, 다이빙벨. 그 안타까움의 단어가 되풀이되던 순간, 먼 바다에 작은 배를 타고 나가 자식의 이름을 부르던 그 부모들을 뒤로 한채. 의전을 이야기하고, 라면을 챙겨 먹고,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기에만 급급했던 그 야만의 시간... 시작은 거기서부터였을지도 모릅니다.
[손석희, 앵커브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