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퇴사여행, 서유럽

포르투, 도오루강의 낮과 밤

야채타임스 2024. 3. 17. 23:35

- 밤의 동 루이스 다리

 

 
다리를 건넌다. 다리 위에선 다리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왠지 그 신지로짤을 넣어야 할 것 같은 문장이긴 하지만. 다리 위를 달리는 메트로의 속도감마저 아련하고 낭만적이다. 고소공포증이 있었나 보다. 다리를 건너는 시종일관 온몸에 저려서 힘이 들었던 느낌이 새록새록 다시 든다. 다리 아래로도 강을 건널 수 있으니 무서우면 내려가면 되는데 그건 다음날 알게 되었다.

 
어둠에 잠기는 포르투. 불타오른다. 아름답다. 도오루강의 동루이스 다리. 에펠의 제자가 만들었다는데 그 선생에 그 제자다 싶었다. 리스본 엘리베이터부터 철제 매니아. 에펠을 뛰어넘은 청출어람인지 에펠탑이 초기에 받았던 비판과 같이 흉물이라는 평가가 많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둘 다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다. 그런데 에펠은 자신의 이름을 붙였는데 에펠의 제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거지.

 
떠들썩한 분위기가 났던 강변의 야시장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까만색 고양이를 만났다. 주택가에 사는 아주머니가 밥을 챙겨주시면서 보살피시는 것 같았는데 애가 참 도도했다. 그림같이 앉아있네.
 
 


 
 

- 도오루강의 잔물결

 
강변이 보고 싶어 다시 다리를 건넜다. 고소공포란 밤에 더 심한 것인지 지난밤보다는 가뿐하게 건넌 것으로 기억된다. 야경도 좋았지만 파란 하늘과 맞닿은 빨간 지붕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강의 풍경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다리에서 마을로 내려와 보았다. 도오루 강변의 지역 주민들. 욘석들 완전 귀엽게 앉아 있잖아. 어제 만난 그 까만 고양이는 어디 있을까 싶었던. 

 
밝은 날 가까이에서 바라본 다리의 규모는 대단했다. 번들렌즈로는 도저히 한 번에 찍을 수 없는 화각. 에펠탑이나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나, 이 다리는 예술일까 기술일까. 그리고 왜 에펠의 제자는 자기 이름은 없고 에펠의 제자로만 알려져 있나. 청출어람 하지 못하면 이렇게 되는 건가.

 
강변에 내려오니 포르투 와이너리 거리가 있었다. 와인투어가 있다는데 알코올 1%에도 취하는 나는 여행 중 시음할 용기가 없어 포기하고 선물용으로라도 사고 싶었지만 아직 갈 길이 너무 많이 남아 또 포기했다. 포르투 와인이 그렇게 좋다는데 알쓰의 인생이란 참 재미가 없다. 보리밭만 지나가도 주정한다는 말처럼 나는 술이 아닌 조금 과하게 발효된 음료를 마셔도 인사불성이 된다. 소주 한잔 마시고 부리는 주사란 참으로 싼 맛이지.

 
강변에 앉아 바케트를 철근처럼 씹어먹으며 몇 시간 동안 갈매기 구경을 했다.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당연히 연장 탓을 하는 선무당처럼(맞는 표현인가?) 카메라가 좋지 않은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냥 갈매기 사진만 냅다 찍었다. 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블럭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의 저 색감과 형태를 보라.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한 과하지 않은 빈티지한 멋을 가진 도시이다.

 
다리 아래쪽으로도 강을 건널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나는 여기서 평생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을 하나 배웠는데 무조건 자동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것. 쌀로 밥 짓는 소리를 왜 이렇게 힘줘서 하느냐 하면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횡단보도에서 자동차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으면 여기 운전자들은 거의 백 프로 무조건 손짓으로 보내줬다. 여행자임이 표시가 났던지 환하게 웃어주기도 하고. 아 젠틀하고 여유롭다.
 
특히 이 거리에서 만난 한 운전자가 나보다 먼저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날 먼저 보내주었던 그 순간이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서 나는 지금 운전할 때 횡단보도에서는 내가 먼저 정지해서 보행자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기다려주는 게 아니라 자동차는 보행자를 기다리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그럼 민식이놀이라는 잔인한 단어도 쓰지 않을 텐데. 신호등이 깜빡일 때 안 건너는 게 착한 게 아니고 빨간불에도 건널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법이다. 시속 30km가 너무 느리면 집에서 빨리 나와. 

 
전날 밤 보았던 정열의 야시장은 상쾌하고 활기찬 거리로 바뀌어 있었다.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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