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공산당이 싫어요.
Oppenheimer (2023) / Christopher Nolan
워싱턴 여행 때는 생각 하지도 못하고 지나갔는데 최근 영화를 봐서 그런지 Edgar Hoover Building을 보면서 오펜하이머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나는 이 분이 원자폭탄을 만들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원폭 가해자로서 과학자의 윤리 의식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핵개발 반대와 수소폭탄 연구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이후부터 공산주의자로 몰려 철저한 민간인 사찰과 사회적 고립으로 고통받는 삶을 살았다는 걸 영화를 보고 알게 되었다. 범접할 수 없는 천재의 삶조차 산산이 조각내 버리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물고문, 전기고문 장면 한번 없이도 충분히 끔찍했다.
Seberg (2021) / Benedict Andrews
두 번째는 진 세버그.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누벨바그의 여신 진 세버그를 연기했다고 해서 그냥 ‘예쁘겠네’ 하면서 봤는데 이 분도 타국에서 인권운동 하시다 요절하신 분이었다는 걸 이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다.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책을 좋아했고 그 책을 영화화한 작품의 주연을 맡고 원작자이자 감독인 로맹가리와 결혼까지 했던 배우구나 정도로만 인지했었지 그 시대에 인종차별 철폐와 흑인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다 FBI의 관리 대상이 되어 끊임없이 감시당하는 인생을 살았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거기다 블랙펜더당 대표와의 추문, 사산의 충격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실종 후 사망하여 발견되었다는 슬픈 결말까지.
누구나 진보적 믿음을 가지고 민주주의 투사가 될 수 있지만 나는 충분히 기득권층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들이 신념을 가지고 투쟁할 때 그 가치가 커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지지만으로도 이러한 신념이 단지 가난한 취약계층의 투정이 아닌 마땅히 지켜져야 할 정의라는 사실의 방증이지 되지 않나.
The Crucible (1997) / Nicholas Hytner
The Crucible / Digital Theatre
마지막 세일럼 마녀 사냥을 담은 희곡인 시련(The Crucible)의 작가인 아서 밀러.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동명의 영화가 1997년에 개봉했었고, 2015년 리처드 아미티지가 London Old Vic theatre에서 존 프록터 역할을 맡은 연극 The Crucible을 Digital Theatre라는 영국 연극 플랫폼에서 볼 수 있다길래 결제해서 봤는데 역시 영어 그중에서도 영국 영어의 장벽에 부딪혀 구경만 하다 나온 다음 책을 구매해서 봤다.
각설하고,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일어난 집단적 광기와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 작품이 시대적 상황을 통렬히 비판했다고 해서 비유와 은유 덩어리의 문학 작품 작가를 법정에 세울 정도였다면 도둑이 제 발 저린 수준이 아닐는지. 문학 작품을 아주 제대로 이해하셨다. 일이 있을 때마다 연예인 마약 사건을 터트리고 죽음으로 모는 우리 정부보다는 나은건가.
극작가는 자신이 몸담은 나라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그곳을 떠나야 한다. - 아서 밀러
London Old Vic theatre의 연극 The Crucible을 볼 수 있는 Digital Theatre
각종 영국 공연을 볼 수 있는 플랫폼
https://www.digitaltheatre.com/
이렇게 남의 나라 사건만 다시 되짚어봐도 마음이 좋지 않은데 멸콩이니 뭐니 하는 인간들은 대체 얼마나 싸구려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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