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맨쇼의 극치
Predestination (2015) / Michael Spierig, Peter Spierig
SF문학의 거장 로버트 하인리히의 단편 소설 All You Zombies를 영화화한 타임 패러독스, 원제는 Predestination, 운명 예정설. 시간 여행이라는 원작의 심플한 스토리 라인에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요소들을 접목하여 치밀하게 구성한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운명 결정론적 사고와 시간 여행의 모순까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에 도대체 왜 충격 반전의 스릴러라는 카피를 붙인 것인지. 충격적이긴 하지만 반전보다는 이야기의 전개에 집중을 해야 하고 집중을 해도 놓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 어쩌면 모든 것이 반전일지도 모를 그런 영화이다.
- 아래 매우매우 스포일링 -
영화를 반복해서 봐도 스토리 정리가 안되서 시간순(?? 영화의 시간순)으로 매우 매우 스포일 해보았다. 이건 교차 편집 정도가 아니고 그냥 거미줄 편집.
1. 템포럴은 수백명의 사상자를 만들어낸 피즐 바머를 추격하는 요원이다. 어느 날 폭탄을 제거하다 큰 부상을 입고 성형수술을 한다. (이름이 템포럴이다.)
2. 마지막 임무를 받은 템포럴은 뉴욕의 바에 바텐더로 위장하여 존을 만난다.
3. 존은 템포럴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3-1. 존의 예전 이름은 제인. 고아원에 누군가 자신을 버리고 갔고 다른 여자아이들에 비해 독립적이고 다혈질적 성격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며 성장하게 된다. 지적 육체적 능력을 인정받아 우주 비행사 채용 테스트를 받지만 조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된다.
3-2. 제인은 대학을 다니며 우연히 어떤 남자를 만나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남자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고 홀로 임신한 제인은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3-3. 출산 직후 자신에게 양성의 생식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과다 출혈로 여성 생식기가 제거되었고 남은 생식기인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물려주기 위해 아기에게 제인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3-4. 어느 날 병원에서 아기 제인이 납치되고 제인은 좌절한다. 그 후 성전환 수술을 하고 존이 된다.
3-5. 존은 파트타임 일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자신의 인생을 망쳐 놓은 그 남자를 저주하며 인생을 살아간다.
4. 템포럴은 존에게 그 남자를 찾아가서 죽이게 해 주겠다고 하며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가기로 한다.
5. 존은 제인이었던 3-2 시간으로 돌아가 학교 앞에서 그 남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6. 존은 남자를 기다리다 한 여자와 부딪히는데 그 여자가 자신, 과거의 제인임을 알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존은 제인이 사랑받기에 충분한 여자임을 안다. 이는 필연적인 사랑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나와 닮은 사람을 찾기 때문에 존은 제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만 그러나 제인은 자신을 버린 존을 증오한다.
7. 템포럴은 존과 제인이 만나는 동안 자신이 폭탄을 제거하다 사고를 당하는 1번 시간으로 돌아가지만 역시 피즐 바머를 막지 못하고 폭탄 잔해를 회수한다. (피즐 바머에 대한 단서)
8. 제인이 출산한 3-4 시간으로 돌아가 아기 제인을 납치하고 제인이 고아원에 맡겨진 3-1로 이동하여 아기 제인을 고아원 앞에 두고 간다. (제인의 순환은 이렇게 시작된다. 시작이라는 말 자체가 웃기지만.)
9. 템포럴은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떠나기를 주저하는 존을 설득하여 본부로 데려가고 존의 요원으로서 삶이 시작된다. 템포럴의 마지막 임무는 자신의 후임을 데려오는 것이었다. (존이 제인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옆에 없어야 아기 제인을 다시 고아원에 둘 수 있고 피즐 바머를 막을 수 있다고 설득당한 것으로 보인다. 존과 제인은 철저히 고립되어야 하기 때문에)
10. 템포럴은 마지막 임무를 끝내고 타임머신을 마지막으로 작동시켜 뉴욕 테러 직전 시간으로 이동한다. 은퇴 후 요원은 타임머신을 소지할 수 없지만 템포럴의 타임머신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오류처럼 작동을 멈추지 않는다.
11. 템포럴은 타자기를 구입하고 Jane Doe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쓴다. (Jane Doe는 신원 미상의 시체를 부르는 명칭으로 남자는 John Doe라고 부른다.) 템포럴 요원의 마지막 임무가 후임으로 자신을 데려다 놓는 것임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1번에서 템포럴은 부상을 입고 성형수술을 했다. 성형수술 전의 얼굴이 존인 것이다.
12. 템포럴은 로버트슨이 준 봉투의 단서를 좇아 세탁소에서 피즐 바머, 바로 은퇴 후 자신을 만난다. 피즐 바머는 템포럴이 여러 차례 시간여행을 하면서 발생한 정신이상 증상의 이형적 자아로, 바로 제인과 존, 템포럴 이들 존재의 이유가 된다. 피즐바머를 만들어 내고 그를 저지하며 조직을 견고하게 만들고 동시에 자신과 싸우는 가장 유능한 요원의 끊임없는 이야기를 직조해내는 장본인은 바로 로버트슨이다. 제인을 고아원으로 보내게 하는 것, 고장나지 않은 타임머신을 템포럴에게 주는 것 모두 로버트슨의 의도이며 정치적 목적이다.
13. 피즐 바머는 자신을 죽인다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또 다시 폭파범이 될 것이라 경고하지만 템포럴은 피즐 바머를 죽이고 다시 피즐 바머가 되는 순환을 시작한다. 피즐 바머는 템포럴의 타임머신을 이용해 시간을 이동하며 자신, 템포럴 요원과 끊임없는 싸움을 한다. 피즐 바머는 템포럴이 자신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순환을 끊어버리길 바라지만, 템포럴은 제인이 존을 증오하듯 피즐 바머를 증오하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과거를 동경하고 사랑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은 스스로를 증오하고 멸시한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으로, 혹은 시간의 흐름 때문에 필연적으로 변해버리는 미래를 미워하게 된다. 이들은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과 대면하며 같은 감정을 표출한다. 이 영화에서 놀라웠던 점은 바로 인간이 느끼는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존, 제인, 템포럴, 피즐 바머라는 존재로 치환하여 표현한 연출이었다.
영원히 자신의 꼬리를 먹는 뱀. 자신의 손에서 태어나 자신의 손으로 죽는 역설적 순환 고리. 이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누군가가 단서를 남겨 존이 제인을 떠나지 않고 행복하게 살거나 템포럴이 피즐 바머를 죽이지 않고 순환을 끊어버리는 언제가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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