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유럽

클림트, 벨베데레 궁전

야채타임스 2025. 2. 23. 21:54

 
- 꽃이 없어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옛날 옛적 호랑이는 담배를 피우고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나는 서울에 갈 기회가 생기면 꼭 예술의 전당에 들러 사진이나 회화 전시들을 보고 내려왔는데 이때 고흐,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베르메르, 클림트, 에곤 쉴레 등의 미술관 굿즈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이때 유행했던 화가들에 대한 소설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고흐가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리고 클림트 등등. 특히 클림트는 화가의 여성 편력에서 나오는 퇴폐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미술적 가치보다는 그의 그림이 지향하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거기에 에밀리 플뢰게의 서사가 더해진 낭만적인 지점을 동경했던 것 같다. 꽃이 없어 이것으로 대신한다고 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클림트의 작품은 국내에 키스를 제외한 주요 작품이 대거로 들어왔던 전시에서 이미 제체시온의 베토벤 프리즈까지 봤기 때문에 미술관을 크게 가고 싶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여기에 와보니 키스는 봐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 벨베데레 궁전으로 향했다. 비엔나 분리파의 주도로 설립된 벨베데레 갤러리는 중세부터 현재까지 오스트리아의 예술을 아우르며 유겐트슈틸, 즉 아르누보의 대표 예술가인 구스타브 클림트의 최대 규모의 컬렉션과 에곤 쉴레 등의 비엔나 모더니즘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고흐, 모네 등의 인상주의 작품 또한 보유하고 있다.  .  

 
프란츠 자버 메서슈미트, 굳게 다문 입술이 보여주는 즐거움과 의식적인 침묵. 인물 두상 시리즈 작품들 중 극단적인 표현 방식을 보이고 있지만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한 클림트의 작품 앞.

"나에게는 말하는 재능이나 글을 쓰는 재능이 없다. 나 자신 또는 나의 작업에 대해 알기는 원하는 사람은 나의 그림을 유심히 보고 그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또 무얼 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 Gustav Klimt

이 세상 어딘가에 '봄의 나라'가 있다. 모든 사람들은 일생에 단 한 번 그곳에 간다. 대체로 아주 잠깐 머무를 뿐이지만, 꽤 오래 머무는 사람도 있다. 당신과 나도 언젠가 그 나라에서 만났다. 우리는 미열에 들떠 서로의 사랑을 갈망했으며, 스쳐 지나간 손길에도 소스라치게 놀랐으며, 아주 잠깐의 이별은 우리의 가슴을 조각조각 부서지게 했다. 당신을 잡을 수 있다면, 사랑을 얻을 수 있다면 절벽에서 떨어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평생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비정상적인 과민반응' 상태를 오래 견디지 못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미열에 들떠 모든 것들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곧 과잉된 집착과 욕망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봄의 나라'로부터 추방당한다. 그곳을 떠나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봄의 나라'는 그저 신기루일 뿐이라고. 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가루일 뿐이라고.
좀 더 솔직한 사람들은 그곳의 기억을 노래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클림트는 그 기억을 그림으로 그린 사람이다.
- 황경신, 그림 같은 세상

 

키스를 통해 클림트가 기록하고자 했던 것은 에밀리 플뢰게와의 관계였을 거라고.
 

꽃이 없어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클림트가 에밀리 플뢰게에게 보낸 엽서

나 울어
ㅠㅠ


 
 

 
카페 자허 (Cafe Sacher), 자허토르테가 처음 만들어진 카페. 초콜릿 시트 사이에 잼을 바르고 묵직한 다크 초콜릿으로 코팅한 정통 초콜릿 케이크이다. 물론 비슷한 초콜릿 케이크야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저 클래식한 커피잔과 접시를 보라. 아름답다. 데멜에서도 자허토르테를 파는데 뒷얘기가 재밌다. 프란츠 자허가 황실 베이커리에서 왕자를 위한 토르테를 만들고 본인 매장에서도 판매를 했는데 그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고자 훈련받는 곳이 데멜이었고 아버지의 레시피를 발전시켜 현대의 토르테를 완성했다고. 오리지널에 대한 분쟁도 있었다고 하는데 케이크 상단에 올려지는 초콜릿 모양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도 로판 같아.

 
 


 

그리고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 갔다. 어떤 오페라를 봤는지는 기억도 안나는 이유가 또 잤거든. 너무 피곤해서 공연을 볼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는데 여행 메이트는 공연이 보고 싶어 이미 예매를 해놓은 상태이고 나는 오페라 하우스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상호 협의하에 좌석에 앉자마자 잘 거라고 선언하고 기절했다. 공연 전 시간이 많이 남아 오페라 하우스 투어를 했는데 공연은 생각도 나지 않고 이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사진을 연신 찍어댔던 것 같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예술 작품이다.
 
빈 오페라 극장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로 1869년 개관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 시설 중 하나이며 당시 빈 시민들의 엄청난 관심 속에 건설되고 있었는데 디자인에 대한 비판이 컸고 완공 전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건축가가 사망해서 극장의 오픈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어떻게 비엔니즈들은 이런 건축물을 두고 비판이란걸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눈이 하늘에 달렸나.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나 십 년 후 복원되어 재개관했고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의 유명한 지휘자들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매년 빈 오페라 무도회가 열린데.. 무도회.. +_+

 
브로드웨이의 오페라 유령에 이어 빈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숙면을 취했지만 사이드 박스석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끄럽진 않았다. 

 
그렇게 숙면 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왕돈가스 먹으러 갔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저녁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호텔에서 예약해 준 곳을 갔는데 돈가스 집이었다. 비너 슈니첼. Wiener Schnitzel. 맛도 모양도 돈가스에 가까운데 소고기로 만드니깐 규카츠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아니 아니 비후까스ㅋㅋ 사이드 메뉴로 오일을 뿌린 감자와 채소 샐러드가 나왔고 레몬을 쭉 뿌리면 느끼하지 않아 다 먹을 수 있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소원은 매일매일 호텔 조식처럼 먹을 수 있는 것ㅋㅋ 현실성이 없으니 소원이겠지. 아! 누가 차려주면 소원까지 안 가도 되는구먼. 남이 만들어 놓은 음식을 쏙쏙 퍼먹기만 하면 되는 여행의 일등 재미이다. 조식을 먹고 잠깐 호텔 근처를 걸어 다니며 구경하다 잘츠부르크로 이동하기 위해 빈 중앙역으로 향했다.

 
아름답고, 깨끗하고, 치안은 완벽하고 언제 어디서나 카페와 레스토랑에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여행지 빈, 사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 번쯤 멋을 잔뜩 부린 여행자가 되어 빈의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경험은 해볼 만한 것 같다.

 

 

 

 




 
쇼핑도 했지. 판도르프 아웃렛. 옷만 몇벌 샀는데 돌아가는 셔틀을 기다리던 중 옆에 앉은 여자분이 보따리로 산 버버리를 보여주며 여기 정말 굳이라고 엄지를 척 올렸다. 할인율이 진짜 높았던 것 같은데 쇼핑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닌 나는 다시 매장으로 돌아갈 기운이 없어서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난 아웃렛만 가면 에너지가 정말 빠르게 바닥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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