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유럽

잘즈부르크 페스티벌이 아니고

야채타임스 2025. 1. 27. 01:32

 

- 프로도가 가려고 했던 곳이 처음부터 모르도르는 아니었으니깐.

 

 
꽤 오래전에 메가박스에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 라이브 중계를 본 적이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오스트리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축제로 매년 여름 잘츠부르크에서 클래식 콘서트, 오페라, 연극 등의 공연을 선보이고 있고 이때 상영한 공연은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였다. 그래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가보고 싶은 마음에 바로 여행 계획을 세웠는데 이때 뭔가 좋지 않은 감이 발동하여 다음 해 여름의 오스트리아가 아닌 당해 겨울 여행을 가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여행 계획을 할때는 늦은 여름이었는데 같은 해 가을, 우리 업종에서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가 터졌고 오시땡 하는 현생에 매우 만족하며 살고 있던 나는 갑자기 무슨 변덕이 생긴 건지 그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위해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현 직장에서 비슷한 규모의 차세대 프로젝트를 이미 종료한 상태라 별생각 없이 지원한 거였는데 서류에서 덜컥 붙어버리고 실무자 면접에서 덜컥, 또 임원 면접은 죽을 쑤고 나왔는데도 붙어버린 것이다. 뭐 이런.. 퇴사 여행 후기에 썼던 대로 신입사원에게는 시키지 않는 메인 업무를 입사부터 십 년 동안 굴러다니며 한 경력 덕에 큰 노력 없이 다시 이직할 수 있었던 것. 입사 후 업무가 배정되고 나서 왜 신입 사원에게 그 업무를 맡기냐는 어떤 PM님의 질문에 우리 파트장님이 맷집이 세 보여서 라는 미치고 팔짝 뛰겠는 답변을 하셔서 그냥 맷집  좋은 역할을 맡았는데 그 PM님이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이 업무를 하고 나면 어딜 가도 인정해 준다는 격려를 해주셨었다. 이직을 하면서 그 말이 뭔지 정확하게 느꼈고 싸부님한테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고. 
 
그렇지만 차세대라는게 뭐 일단 2,3년은 인생 묻고 가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만약 다음 해 여름으로 여행 일정을 잡았다면 뭐 모두 취소해야 해서 다행이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연봉 협상이나 다음 일정, 서류 구비 등을 이유로 계속 연락이 되어야 했기에 바짝 긴장한 상태로 여행을 해서 아쉬움이 좀 남았었다. 그리하여 이번 여행과 지난 메르스 기간 중 여행, 그리고 코로나 직전에 예약해서 모조리 취소당했던 여행 등을 이유로 1년 후 마일리지 예약 같은 건 절대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한때 유행했던 퇴사 여행

- 퇴직금으로 떠나는 신나고 착잡한 유럽 여행 첫 직장에서 퇴사한 지도 10년을 훨씬 넘어갔다. 직장인에게 주머니에 사직서를 넣고 다니다 상사에게 자신 있게 그것을 던지는 상상을 한다던가

caffeinehigh.tistory.com


이번 여정은 영국 항공을 이용해서 반나절 정도 런던에서 스탑오버 한 후 오스트리아 빈, 잘츠부크르 여행 후 귀국. 언젠가 영국항공이 좌석도 넓고 기내식이 맛있다는 후기를 봐서 이번에 런던 경유해서 구경하다 포트넘엔 메이슨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잠깐 내린 영국은 역시나 크리스마스인 듯했다. 할로윈 시즌보다 도시가 더 예뻤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는 게 아니고 방앗간으로 출근한 참새라 포트넘 앤 메이슨이 경유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물량의 차, 과자들을 공수해 올 수 있었다.

 

 

Train to Heathrow | London To Heathrow | Heathrow Express to London

How to get your Heathrow Express tickets Choose from a variety of convenient options to purchase your tickets - online, at the station, through our app, or from ticket mach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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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까지 일하고 짐 싸느라 한숨도 못 자고 비행기를 탄 나에게는 무조건 빨리 도착하는 교통편이 필요했기 때문에 공항에서 런던으로 왕복하는 교통편은 가격대가 있긴 하지만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이용했고  숙소는 소피텔 런던 히드로에 투숙한 후 새벽 오스트리아행 비행기를 탔다. 

 

Steigenberger Hotel Herrenhof - Wien | H Rewards

The independent Austrian Ecolabel certifies, among other things, hotel businesses that implement sustainable practices in all their business areas, from organic food from regional suppliers to the responsible use of water and energy, by the Austrian Federa

hrewards.com

 
빈 숙소는 Steigenberger Hotel Herrenhof. 요즘이야 환율도 그렇고 호텔 가격대가 너무 올라서 괜찮은 호텔 다니기가 힘든데 이때 호텔비에 비해 시설이 청결하고 내부가 넓어서 마음에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은 맘먹고 가지 않는 이상은 여행중에 컨디션 좋은 숙소에서 누워서 쉬는 시간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그 조건에 매우 부합하는 호텔이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도착날 저녁 식사 후 정말 예쁜 디저트를 무한대로 먹어서 아직도 혈당 올라가는 느낌이 기억나는 것 같다. 혈당 스파이크가 와서 바로 잤을 듯!

 
아마 슈톨렌을 여기서 처음 먹어봤던 것 같다. 한국에서 슈톨렌을 보고 아 그때 먹었던 케이크! 라고 생각했다. 디저트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니깐 이때 기분이 한껏 업되었다.
 
 


 

거의 무계획으로 오스트리아에 떨어져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우리에게 호텔에서 빈 시청사 앞 광장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알려주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진 크리스마스 그 자체. 이것이 크리스마스다.


반짝반짝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이렇게 많은 오너먼트가 있었는데 나는 왜 몇개밖에 사오지 않았을까. 언제나 느끼지만 여행에서는 절대 돈을 아끼지 말아야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야해! 다시는 못 올 곳일거라고. 요즘 12월이면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어놓을 오너먼트를 한두개씩 사모으는데 마음에 드는걸 고르는게 쉽지가 않아서 이런 마켓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정말 소중하다는걸 매번 느낀다.

 
상단 위 중간에 있는 종은 샀다.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꺼내어 놓는데 소리도 예쁘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음료. 과일향이 달달하게 나는 펀치 종류의 데운 음료로 알코올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컵 보증금을 내고 음료를 받아온 후 컵을 반환해도 되고 기념품으로 가져도 되는데 그렇게 품질이 좋지는 않았다.


시청사 가장 높은 첨탑 꼭대기에는 빈의 상징인 라트하우스만(Rathausmann)이라고 불리는 막시밀리안1세 황제의 갑옷을 입고 방패와 깃발을 매단 창을 든 기사 동상이 있는데 밤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유시민 작가의 유럽 도시기행 2에 여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라트하우스만을 올려다보며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죽였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요제프 황제는 한 달 후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자 슬라브족의 맹주를 자처한 러시아제국이 세르비아를 편들었고 독일이 오스트리아와 손을 잡았다. 독일과 견원지간인 프랑스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고 전쟁의 불길은 영국과 유럽 대륙 전체로 번져나갔다. 나중에는 오스만 제국이 오스트리아 진영에 가담했고 독립을 원한 중동의 아랍 민족이 영국을 지원했으며 일본과 미국까지 전쟁에 뛰어들거나 휘말렸다. 인류 역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글로벌 전쟁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거대 제국들을 무너뜨렸다. 합스부르크제국과 오스만제국의 폐허 위에 각각 오스트리아공화국과 터키공화국이라는 조그만 신생국이 탄 생했고 러시아제국에서는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 최초의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섰으며 동유럽과 발칸반도, 중동 등에는 수많은 민족국 가 또는 국민국가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났다. 러시아 동전을 녹여 만든 라트하우스만의 껍데기는 그 모든 비극을 예고한 시대의 징후였는지도 모른다.
- 유시민, 유럽 도시기행2

 




이번 크리스마스는 너무 크리스마스 같지도 않게 보내서 이 사진들을 보니 다시 설렌다. 탄핵 가결하고 체포 한후에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했는데 사람이라는게 끝도 없이 욕심을 부리게 되서 체포하면 구속하고 구속하면 파면하고 파면하면 사형 때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지라.. 어제는 구속기소했지! 아휴 아주 그냥 눈앞에서 썩 꺼졌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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