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찾았다. 처음으로 등록했던 미술학원 취미반 수업이었는데 선생님이 첫 시간에 그리고 싶은 거 아무거나 그려보라고 해서 마음에 들었던 일러스트 막 섞어서 그렸던 첫 번째 수채화. 모작. 오래돼서 참고했던 일러스트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림은 없어졌는데 사진을 다른 곳에 올려놨었네. 그렸던 순서가 기억나는데 러프 스케치를 해보라고 하신 후 이 그림의 채색은 뭘로 하고 싶은지 앞으로 그려보고 싶은 게 뭐가 있냐고 하셔서 수채화를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A4용지에 디테일하게 밑그림을 그리고 다음시간에 수채화 재료를 준비해 오라고 하셨다. 스케치가 끝나고 수채화 용지 위에 스케치한 A4를 올려놓고 얇은 볼펜으로 꾹꾹 눌러 따라 그리라고 하셨고 트레이싱을 한 수채화지에 자국을 따라 펜으로 다시 밑그림을 그리게 하셨다. 벌써 세 번 그린 것! 그리고 수채화는 처음이니 채색은 하나하나 옆에서 알려주시며 완성을 도와주셨다. 그때 물이 번지는 느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다음부터는 줄 긋기, 소묘, 인체드로잉 같은 걸 하면서 손발만 그려댔던 것 같은데 그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틈 없이 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만 잔뜩 쌓여있는 상태. 미친 듯이 바쁘게 일하다가도 미술학원 가는 날이면 어떻게든 빠져나와 세 시간 동안 이젤 앞에 붙어 앉아 손목만 움직였었다. 난 그때 생각 같은 게 하고 싶지 않아서 회사만 다니고 그림만 그리면서 그 시간을 버텨냈고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옆에서 그림을 교정해 주면서 먹이를 주듯이 애니, 영화, 드라마 얘기들을 툭툭 던져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었다. 왕좌의 게임을 알려준 것도 선생님이었고 장난 아니라며 꼭 보라고 했던 그게 아직도 기억난다. 난 내 주변에서 왕좌의 게임이 방영되자마자 본 1번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