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은 캣니스이지만 판을 짜는 게임메이커는 플루타르크라는 것이 슬픈 영화
The Hunger Games / Francis Lawrence
2012년 트레일러에서 제니퍼 로렌스가 활 쏘는 한 장면을 본 후 당장 달려가 영화를 보고 바로 3권까지 책을 주문한 뒤 3일만에 모두 읽어 버리고, 그 후 4년 동안 매년 시리즈가 나올 즈음마다 책을 다시 곱씹으며 기다렸다.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침대에 엎드려서 먹어 치우듯 읽어버렸는데, 그만큼 내용과 문체가 흡입력 있는 명작 판타지이다. 초등학교 이후로 몇 십년만에 눈 나빠지니 책 그만 읽으라는 소리를 들었던 듯. 등장인물의 내면을 읽어나가고 싶다면 인물의 형성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책을 먼저 본 후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핵전쟁 이 후 미대륙은 '판엠'이라는 독재국가가 의해 12구역으로 나뉘어 관리되고 체재 유지를 위해 각 구역에서 십 대 청소년 24명을 추첨하여 '헝거게임'이라는 생존게임을 벌인다. 참가자들이 경기장 내에서 생존을 위해 치르는 무시무시한 전쟁을 캐피톨의 시민들은 리얼리티쇼로 시청하며 단순한 오락 거리로 소비한다. 딱 월드컵 정도 되는 열기.
단 1명만 살 수 있는 생존 게임의 참가자는 추첨 방식으로 선정되는데 12구역, 먹고살기도 팍팍한 캣니스에게 동생 프림이 당첨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아버지의 사망 후 삶의 의지를 잃어 버린 어머니를 대신해서 살림을 꾸려나가는 캣니스에게 프림은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이다. 프림, 프림.. 캣니스는 동생을 대신해 자원해서 헝거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판엠의 불꽃이 개봉된 이후, 이 영화를 배틀 로얄의 미국판 리메이크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배틀 로얄이 기타노 다케시적 우울과 허무주의를 아이들의 살육으로 연출했다면, 이 이야기는 공포 정치의 수단인 헝거 게임과 희생양으로 이용되는 일명 조공인이라는 아이들, 그리고 그 정점에서 정의감과 상식과 능력으로 무장한 캣니스로 저항 의식을 표출한다. 캣니스의 세 손가락 경례는 태국 시위에서도 등장하였다.

판엠 각 구역 참가자들의 특기와 장점은 지역적 특색에 따라 달라지는데, 캐피톨과 가까운 앞쪽 구역 친구들은 대부분 먹고사는 게 나쁘지 않은지 헝거 게임의 우승을 위해 살인 병기로 길러진 아이들을 프로 선수로 참가 시킨다. 그에 반해 1차 산업이 발달한 낙후된 지역의 아이들은 그럴 여력이 안 되는 것인지 캣니스와 같이 무작위 추첨으로 끌려와 게임의 먹이 사슬에서 아래를 담당하게 되지만 그래서인지 살인에 죄책감을 느끼고 연대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참가자가 다수 분포한다. 그 대표적인 참가자이며 이야기 전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루'. 가장 어리고 약한 존재인 루의 죽음은 캣니스를 각성시키고 단순한 게임 우승자로 머무르게 하지 않는 원동력이 된다.

피타의 증언에 의하면 캣니스가 사냥해서 팔았던 다람쥐는 정확히 눈에 화살이 명중해 있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캣니스의 궁술은 먹고사니즘으로 단련된(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회사에서 배우는 게 엄청나게 빠른 것처럼) 무엇보다 강력한 살인 기술이지만 그녀에게는 살육이 목적이 아닌 가족의 생활과 생존이 목적이었기에 헝거 게임 도중에도 인간적 존엄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순수성의 상징인 프림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마지막 생존자로 루와 함께 남았다면 캣니스는 루를 살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인간의 본능 중에 하나가 나보다 더 어린 세대를 살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인데 성선설이라기보다는 그게 세대를 존속시키는데 더 유리하기 때문에 발달한 진화적 본능이 선의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림과 루는 동일시되는 존재로 캣니스에게 삶을 목적을 상기시키고 인간성을 회복하게 해 주지만 캣니스는 결국 아무도 지키지 못한다.





내가 겨눈 총구는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원작의 큰 줄기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역사의 판을 짜는 게임 메이커는 플루타르크였지만 헝거 게임의 주인공은 캣니스였고 결국 마지막 결정과 책임은 캣니스의 몫이었다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사명과 책임 의식에 관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