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의 슬픔은 나의 슬픔보다 크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야간열차를 탔다. 야간열차. 이 얼마나 운치 있고 매력적인 단어인가. 유럽의 열차, 침대칸, 차장 밖으로 보이는 유럽의 풍경. 여행 상품을 고르며 이 야간열차라는 단어가 나를 가장 설레게 만들었으나, 한번 타보고 나니 여행사 놈들이 왜 야간열차를 넣었는지 매우 이해가 잘 되는 상황이었다. 가성비, 원가절감 등등 일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가치를 추구하면서 낭만적인 단어에 그 초라함을 구겨 넣은 자본주의에 찌든 여행사 놈들아! 동유럽 농촌의 풍경은 아름다웠으나, 쪼그리고 잠든 밤사이 온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경험이 싸늘히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다음부터는 야간 버스, 야간열차, 공항 노숙 등은 엄두도 내지 못하겠더라. 트라우마라고나 할까.
보통 잠자는 시간을 이용해 이동시간을 줄이거나, 숙소와 장거리인 경우 비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야간 이동을 많이 이용하긴 하지만, 정말 좋지 않은 점 하나는 보통 이른 오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때문에 숙소 체크인을 할 수가 없어 오전 시간이 애매해져 버린다는 것.
기차에서 내리면 바로 역 밖이 바로 보일 정도로 가깝게 역 정문 앞까지 들어오는 충격의 동역에 도착해서 더 충격적인 기차역 환전 수수료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부다페스트 여행을 시작했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다시 나오기엔 동선이 너무 길어져서 매우 거지 같은 몰골로 캐리어를 끌고 시내를 누비고 다닌 엉성하기 짝이 없었던 두 번째 목적지 부다페스트.
계획은 없었으나, 이러한 상태로 부다페스트에 떨어질지 예상하지 못해 동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유대인 시나고그로 향했다. 유대교와 가톨릭의 차이에 대해서 첨언한다면, 간단하게 예수를 믿고 안 믿고의 차이인데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구원자라고 믿고 전파한 종교가 크리스트교이고, 아직도 구원자가 오지 않았다고 믿는 종교가 유대교이다.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별 차이 없는 사실이지만,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신약의 유무이니 매우 중요한 의미인 것이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는 동그란 모자를 쓴 랍비들이 유대교의 율법 교사. 그 유대인들의 성전, 박물관인 시나고그. 그리고 그 내부에 헝가리 유대인의 홀로코스트 박물관, 추모공원이 있다.
독일의 홀로코스트가 자행되던 당시 노동력의 가치가 없는 아이, 노인은 학살당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매우 가혹한 노동을 했는데 이십 대의 건장한 남자들도 2,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매우 담담하게 그러나 슬픈 역사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어디선가 많이 본 역사이지 않는가. 우리에게 그러한 아로새김이 있을까. 여전히 사회 기득권층으로 존재하는 친일 인사들의 자손들이나 단돈 10억 엔으로 치욕적인 졸속 합의를 해온 정부, 이제는 독립운동의 역사마저 부정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부역자들의 시대에 들어선 지금, 왜 우리가 이제껏 이런 역사를 정리하지 못했는지 너무나 확연히 드러나는 현실이 암울해졌다.
홀로코스트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그리고 전 세계인의 트라우마인 인류에게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되는 역사일 것인데 세월이 너무 흐른 것인지 지금 이스라엘에 의해 자행되는 가자 지구의 학살은 도대체 이들의 슬픔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가늠 할 수 없게 한다. 학생들이 모두 사망하여 학기를 종료한다는 가장 슬픈 뉴스를 접해야 하는 지금, 유럽 대륙의 유대인을 모두 비난할 수는 없겠으나 인종주의 나치즘의 가장 참혹했던 피해자가 현재 가장 잔인한 가해자가 된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 정의란 무엇인지 다시 혼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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