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런던 구경
- 별 것 없는 시내 구경
여행 중에 제일 재미없는 게 명품 거리와 쇼핑센터 걸어 다니는 건데 런던 마지막 날 그걸 다 했던 것 같다. 나는 이 여행에서 여행에 대한 호기심을 거의 다 소진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이후에는 그다지 재미는 없는 충전과 휴식의 시간을 보내는 (간단히 말하면 여행지에서 먹고 자고 누워있었다는 말) 여행을 다녔던 것 같다. 영국 여행 마지막 날 이후의 모든 시간들이 너무 조용하지 않지만 고독하고 시끄럽지만 외로웠던 그런 특별한 시간이었다는 뜻. 그래서 그런지 이 날의 기억은 정말 별일 없는 하루였던 것 같다. 일기마저 고요했으니.

런던 본드 스트릿. 가장 기억에 남는건 어떤 커플이 섹스 앤 더 시티에 샬럿과 함께 나왔던 킹찰스 스파니엘 강아지를 안고 티파니 매장으로 들어가던 장면이었다. 아.. 모든 단어가 다 좋네.



포트넘앤 메이슨. 차와 과자, 캔디 등을 팔아서인지 매장 전면은 정말 동화적이고, 가을이라 내부는 할로윈 장식품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인테리어도 환상적이었다. 디저트와 홍차를 조금 사 왔었는데 가격도 많이 비싸지 않고 맛있어서 금세 다 먹어버렸다. 인터넷으로도 사기 힘든 것 같아서 다음 여행의 필수 방문 코스였고, 영국을 방문하지 않았을 때도 스탑 오버로 경유해서 포트넘 앤 메이슨만 다녀온 적이 있다. 그만큼 좋다는 뜻.


하이드 파크를 지나 거리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는데 알고 보니 버킹엄 위병 퍼레이드 시간이었던 것이다. 운 좋게 출발부터 함께 걸으며 퍼레이드를 볼수 있었고 티비를 통해 익숙하게 봐온 장면들이긴 했지만 좋은 날씨와 빨간 복장의 군악대, 군인들의 행진이 눈앞에서 펼쳐지니 굉장히 멋있었다. 뭐 광화문 수문장 교대의식도 멋있는데.

웨딩 촬영 중인 예비부부, 신부 드레스가 너무 예뻐 한참을 쳐다봤었다. 지금 봐도 예쁘네. 이때 내셔널 갤러리에도 갔었는데 작품을 많이 보지 못하고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이니 아마 찾아보면 엄청난 전시들이 있었겠지만 시카고에서처럼 또 내가 미쳤구나 하며 자학할까 미지의 세계로 남겨두고자 한다. 언젠간 기회가 있겠지.

런던에선 정말 입맛에 맛는 음식이 별로 없어서 스시 체인점인 와사비에 자주 갔었다. 느끼한 것만 먹다 미소 된장국 한 모금에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 나고 간편하고 가격도 싸서 여행의 피로를 달래기엔 그만인 듯. 작년에 뉴욕에서도 봤던 것 같은데 역시 스시는 세계인의 음식이군.

런던에서 마지막 밤, 새벽까지 더이상 쓸일 없는 짐들과 기념품들은 모두 챙겨 보내고 한달 동안 가지고 다녀야할 짐만 가볍게 기내용 캐리어 하나와 백팩에 정리했다. 그러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숙소 체크아웃을 했지만.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지하철을 잘못 타서 동행이 돌아갈 비행기를 거의 놓칠뻔 했으나 차장 아저씨의 도움으로 무사히 빅토리아 역까지 도착했다. 역시 젠틀맨 영국인. 이 날 아침 차장 아저씨, 계단에서 짐 올려준 아저씨, 지하철역에서만 이렇게 두명이나 도움을 줬는데 여행을 다녀보니 유럽인들은 도움을 주는 것에 인색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인종차별도 하긴 하지만 요즘은 관광객에게 그런 것은 거의 없는 것 같고. 여튼 여기서도 지하철을 잘못 타서 우왕좌왕하다 해리포터 우산을 잃어버렸다는 슬픈 이야기. 나의 뇌부분에는 지하철 타는 기능이 없는건가.
동행과 헤어진 후 다시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런던의 마지막 어트랙션(?)인 킹스크로스역으로 갔지만 플랫폼을 보기 위해서는 표를 끊어야 한다는 역직원의 말에 시무룩해져 세인트 판크라스 역으로 돌아갔다. 결국 9와3/4번 플랫폼은 보지 못했지만 해저 터널을 지나간다는 왠지 꿈과 희망이 가득 찰 것 같은 유로스타가 남아 있으니 그만 시무룩해하고, 영국 여행을 마무리했다. 아니, 파리로 향했다.
유로스타 출발역은 세인트 판크라스 인터내셔널, 도착역은 파리 북역. 화살표 표시인 동명의 세인트판크라스 기차역도 함께 있으니 구별해서 찾아가야 한다. 또, 국경을 넘어야하니 체크인도 해야하고 짐검색대도 통과해야 하므로 시간 여유를 두고 도착하는 것이 좋다.